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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시대의 유대 세계(1) - 동방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고대 근동 문화 2023. 5. 7. 16:23반응형
그리스도 시대의 유대 세계-동방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
이스라엘의 신앙을 유지시킨 외적 수단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예루살렘이라는 장소를 예배의 중심지로 삼은 점이다.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을 예배의 중심지로 삼으라는 구약의 명령을 편협하고 배타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그런 준비가 없었다면, 유일신론이 과연 신조나 신앙으로 계속 유지될 수 있었을지 심히 의심스럽다. 고대 세계의 상태와 이스라엘 역사 초기의 경향으로 미뤄 볼 때, 이교적 요소와의 혼합으로부터 구약의 신앙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분리가 필요했다. 만약 그런 이교적 요소와 혼합되었다면, 구약의 신앙은 신속하게 위협받았을 것이다.
70년에 걸친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위험의 근원은 사라졌다지만, 그 민족 가운데 더 많은 사람이 이방 세계에 퍼져 있었다. 그들은 이방의 생활 방식과 문화에 영향을 받았으므로 분리 정책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중요했다. 이 점에서 전통주의라 할지라도 그 사명과 유용성이 있었으니, 율법을 지켜서 율법이 침해당하거나 수정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로마인이나 헬라인, 아시아인은 어디를 다니든지 자신의 신을 지니거나 자기의 종교 예식 혹은 그에 합당한 예식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그들에게는 예루살렘에, 오직 하나의 성전만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오직 한 하나님만이 계셔서 과거에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셨으며 지금도 여전히 시온 위에 왕으로 군림하고 계신 분이시다. 그 성전은 하나님이 세우신 순결한 제사장이 사죄를 위한 제사나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시도록)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가장 엄숙한 속죄를 위해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들어갈 수 있는 곳, 그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지성소의 어둠 속에 법궤가 놓여 있었다. 쉐키나의 영광이 그 위에 머물러 있는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했다.
금향단에서 피어오르는 향의 달콤한 연기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이스라엘의 기도를 상징했다. 일곱 가닥의 촛대에서는 항상 빛이 비치어 하나님의 언약의 임재의 빛을 표시했다. 여호와 앞에 놓인 상에는 매 주 “그 얼굴의 떡”the Bread of the Face이 진설되었다. 이것은 계속되는 희생의 음식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이 떡을 드렸고, 하나님은 그것으로 자신이 세운 제사장을 먹이셨다.
피가 뿌려진 큰 희생 제단에서는 곳곳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사람이 바친 매일의 번제와 절기의 번제가 타올랐다. 그러는 동안, 성전의 뜰은 팔레스타인 태생의 유대인뿐만 아니라 문자 그대로 “하늘 아래 각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로 붐볐다.
이 성전을 중심으로 과거의 거룩한 기억들이 얽혀 있었다. 그 기억에는 훨씬 더 밝은 미래의 소망이 굳게 걸려 있다. 이스라엘 역사와 그들의 모든 전망은 그들의 종교와 교직되었다. 그들에게 종교가 없다면 역사가 없고, 역사가 없다면 종교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역사, 애국심, 종교, 소망이 모두 이스라엘의 통일성의 중심으로 예루살렘과 성전을 가리키고 있다.
그 나라의 암담한 상태도 그들의 견해를 바꾸거나 확신을 흔들지 못했다. 헤롯의 경우도, 헤롯 자신의 죄와 이스라엘이 당시 그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에돔 사람 헤롯이 다윗의 왕좌를 찬탈했다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이스라엘은 그보다도 더 깊은 물 속을 지나 건너편 기슭에 당당하게 섰었다. 그들은 절망적으로 보이던 수세기에 걸친 애굽(이집트)의 속박에서 건짐받았을 뿐 아니라, 자기들을 위해 갈라진 바다를, 또한 자신의 힘을 뽐내고 교만하던 그들의 압제자들을 묻어버린 바다를 뒤돌아보며 하나님이 영감을 불어 넣으신 희년의 아침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바벨론에 끌려간 이스라엘의 포로들은 힘들고 지친 수년 동안 그 도시와 제국의 강가에 시온의 비파를 걸어 놓았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우뚝 솟아 있는 제국의 당당함은 흩어져 사는 이방인들에게 참담한 절망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제국은 무너져 재가 되었지만 이스라엘은 다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다.
이전의 어떤 위험보다도 더 큰 위험이 이스라엘의 신앙과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위협했던 이래로 약 한 세기 반이 조금 더 지났다. 수리아(시리아)의 왕 안티오코스 4세Antiochus IV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광기로 에피파네스Epiphanes, 現神王라 불렸다. 그는 이스라엘의 종교를 금지했고, 그들의 거룩한 책을 없애 버리려 했으며, 무자비한 무력으로 그들을 이방의 종교 예식에 복종시키려 했고, 성전을 올림포스Olympus의 제우스Zeus에게 헌당함으로 그곳을 더럽혔으며, 심지어 번제단 위에 이방 제단을 세웠다. 더욱 한심한 것은, 그의 악한 계획이 배교한 두 제사장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 두 제사장은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거룩한 직책을 돈을 주고 삼으로 상대방을 축출했고 다시 그것으로 돈을 벌었다.
하지만 멀리 에브라임 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그들이 전혀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못했던 도움을 베푸셨다. 3년 후, 즉 훈련받지 않은 그들이 수리아 군대의 꽃이라는 정병에게 승리를 거둔 후에 '하나님의 망치'로 불린 유다스 마카비Judas the Maccabee는 성전을 정결케 했으며,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성전에 선 바로 그 날에 성전의 제단을 회복했던 것이다.
그들의 전 역사에서, 가장 어둔 밤이 지나면 어느 아침보다 더 밝은 아침이 언제나 밝아 왔다. 이것이 모든 선지자가 그들에게 기다리며 희망을 가지라고 권했던 이유였다. 과거에 관한 선지자들의 말은 성취되었다. 그러면 메시아의 도래와 함께 임할 시온과 이스라엘의 훨씬 더 영광스러운 날에 대해 그들이 한 말도 진실이 아닐까?
팔레스타인 유대인의 감정만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물론 팔레스타인 유대인은 이제 소수다. 유대 민족의 다수는 이른바 “흩어져 사는 유대인”dispersion으로 불리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이 용어는 더 이상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추방이라는 원래의 의미를 가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제 완전히 자기의 뜻대로 팔레스타인을 떠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외적 고통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지 않았으므로 더욱, 그 말이 계속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이방 세계에서의 종교적 슬픔, 사회적 소외, 정치적 나그네 라는 그들의 깊은 감정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요세푸스Josephus가 자기 동족에게 상기시킨 것처럼, 비록 “유대 민족이 온 세상의 거민 중에 흩어졌고”, “유대 민족이 그 일부를 구성하지 않은 나라가 세상에 없기는” 했지만, 그들은 어디에서도 참된 안식처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전 150년경에 유대인은 애굽에서 예외적인 특권을 누렸다. 그곳에서 이방인이 지었다고 주장되지만 실제로는 유대인 시빌Sibyl 지은 유대인의 애가는 이렇게 노래한다.
"모든 바다와 나라가 그대의 사람들로 붐비지만,
그대의 존재와 풍습은 모두에게 거슬리고 있네!"
60년 이후에, 헬라인 지리학자요 역사가인 스트라보Strabo는 모든 나라마다 유대인이 퍼져 있다는 이와 유사한 내용을 말한다. 그러나 그의 어투로 미루어 시빌의 불평이 사실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런 감정이 생긴 이유는 앞으로 분명해질 것이다.
현시점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충분할 것이다. 필론Philo이 무의식적으로 가장 깊은 근거를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방 세계에서의 이스라엘의 외로움에 대한 말이기도 하다. “유럽의 모든 도시와 아시아의 도道와 섬들에” 퍼져 있는 자기 동족에 대해 묘사하기를, 어느 곳에 체류하든지 그들에게는 단 하나의 도시가 있으니 그곳은 알렉산드리아도 아니고, 안디옥도 아니고, 로마도 아니고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한 성과 그곳의 성전”이라고 했다.
백성의 대다수가 온 땅에 퍼져 사는 한 나라는 더 이상 특별한 한 나라가 아니라, 세계 국가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나라의 심장의 고동은 예루살렘에서 울리며, 그곳으로부터 생명의 피가 흘러 가장 멀리 있는 백성에게까지 미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바르게 이해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전세계에 걸친 “흩어져 사는 유대인”의 원대한 목표임이 분명하다.
에더스하임알프레드, 복음을 위한 준비; 탄생에서 세례까지, ed. 황을호 et al., trans. 황영철 and 김태곤, 1판 ed., vol. 1, 메시아 -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시대 (서울 종로구 송월동 32-43(110-101): 생명의말씀사, 2012), 5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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